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수사 == 초기에는 언론에서 총기난사 '''사고'''라고 불렀으나 수사 결과 인위적인 '''사건'''임이 드러났다. [[네티즌]] 사이에서 '김민찬 해병은 평소엔 군 생활을 잘 했다'는 증언[* 휴가 중에 싸우는 [[학생]]들을 잘 타일러 [[경찰]]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총기를 훔칠 정도의 대담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부대에 원한을 품고 계획되었던 행동이 아닐까라는 추측, 김민찬 해병이 다른 부대에서 지금 부대로 옮겨온 사람인데 문제가 있어서 온 게 아니냐는 추측만 무성했지만 실상은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 검사에서 7가지나 되는 정신과적 문제가 제기'''되었는데도 해병대 측에서 귀가 시키지 않았고 일일정찰 도중 [[해변]]에 죽어 있는 [[물고기]]를 대검으로 난도질하는 등 김민찬 해병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음이 부대원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 해병대 전역자들은 넷상에서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일 것이라는 의견을 많이 내놓았는데 이는 실제 사건 수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 사건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 [[530GP 사건]]과 달리 '후임'이 '선임을 목표로' 삼지 않고 반대 양상을 보였고, 김민찬 해병은 [[구타]], [[왕따]], 기수열외[* '구타도 없어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참고해 보면 '구타가 가미된 기수열외'인 가능성이 높다.]는 없어져야 한다고 직접 진술했다. 사고조사관과 범인 간 [[필담]]에서도 마찬가지 진술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후에 기수열외는 없었다고 김민찬 해병 스스로 번복진술했다.[[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62401|#]] 김민찬 해병의 사물함에서 3페이지 가량의 [[편지]] 형식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가 발견되었는데, 자신을 비관하는 내용이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 >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제가 그만큼 문제아였고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진짜 제 심정을 말씀드리면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 끝내고 싶다. >---- >- 김민찬 해병의 사물함에서 나온 메모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김민찬은 매우 불행한 인생을 살아 온 인물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따돌림'''에 시달렸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동급생들에게 '''성적 학대'''와 상습 폭행을 당했다. 부모와 의논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에겐 가정 역시 치유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가정폭력|오히려 또 다른 폭력의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도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힘을 기르기 위해 해병대를 자원했지만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군교도소 교도관들이 입을 모아 "민찬이는 군대에 갔기 때문에 사형수가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민찬은 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괴롭힘'''을 당했다. 구타와 욕설은 물론이고 성적 학대까지 수시로 당했다. 7번이나 전출을 요구했지만 모조리 묵살됐다. 그러다 그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김민찬의 인생에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김민찬이 본 것은 '''선임들이 자신의 군모에 소변을 담아 놓은 모습'''이었다. 그는 결국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52314330000756?111145339706&did=tw|#]] 김민찬 해병은 입대 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나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7가지나 되는 정신과적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대에서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증언으로 보아 범행 직전 감경을 고려해 [[음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음주의 목적이 마냥 감경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힘들어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음주로 인해 감경이 되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감경이 된다고 한들 사람 5명을 죽인 것은 매우 큰 중죄이기 때문에 감경이 되든 안 되든 최고형벌인 사형을 면하기는 힘들다. 또한 감경을 바라는 사람이 굳이 수류탄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어차피 들킬 게 뻔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굳이 감경을 위해 음주를 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정말 감경을 원해서 사형을 면하고자 했다면 여러 명이 아닌 자신이 평소에 원한을 졌던 권승혁 해병만 죽였을 것인데 권승혁 해병 외에도 평소 원한도 없던 사람 여러 명을 죽인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승훈 하사가 기수열외와는 겉보기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며 이 하사가 사살되었다는 건 김민찬 해병이 범행에 장애물이라 판단해 사살한 것으로 보고 총격 사건 자체가 기수열외로 인한 사건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증거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5971.html|#]] 그러나 김민찬 해병은 이승훈 하사는 사살했지만 소대장인 [[중위]]에게는 사살하기는 커녕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난 뒤 수류탄으로 자해를 시도하였다.[* 해병대에서 소위 중위는 병사들에게 사람취급도 못받는게 현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해자 권승혁 해병의 유족들은 기수열외에 대해 부인했다. 권승혁 해병의 아버지인 권형구 씨는 사고의 가해자인 김민찬 해병이 자신의 아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혔으며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들었다고 아들에게 들었고 거기에 권승혁 해병은 오직 김민찬 해병 하나 때문에 군생활이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권승혁 해병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 육군|육군]] 하사로 복무 중이던 권승혁 해병의 친형도 알고 있었다.[[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s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81&aid=0002207208&date=20110706&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1|#]][* 권 해병 유족들의 증언과 같은 사건들로 인해 기수열외를 당했을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김민찬 해병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수열외가 정당화되지는 않으며, 마찬가지로 부대 내에서 아군을 향해 총격을 가한 가해자 김민찬 해병의 행동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한편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사건 이틀 후인 2011년 7월 6일 새벽 1시 쯤에 정준혁 해병이 김민찬 해병과 사전에 범행을 모의한 정황을 포착하여 범행공모 혐의로 정준혁 해병을 체포하였다. 정준혁 해병은 구타를 없애기 위해 사고를 친 뒤 탈영하자고 뜻을 모았지만 실제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는데, 합동조사단이 허술한 무기 관리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준혁 해병의 혐의를 파악했으며 가해자인 김민찬 해병이 부대 상황실 내 탄약고에서 총과 실탄을 훔칠 때 정준혁 해병이 자신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조사 내용에 따르면 김민찬 해병이 2011년 7월 4일 오전 10시에서 10시 20분 사이에 상황실 내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을 훔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간이탄약고에서 실탄 75발, 수류탄 1발 등을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합동조사단은 정준혁 해병이 김민찬 해병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정준혁 해병은 공모혐의에 대해 부인했지만 두 사람 모두 사건을 벌이고 탈영하는 데 뜻을 모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11년 4월 9일 부대에 배치된 정준혁 해병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부대원들이 정준혁 해병을 왕따시키면서 [[성경]]을 태우거나(종교 경전 소각 정도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사유다!)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727637&iid=392805&oid=052&aid=0000362408&ptype=011|#]] 이 때문에 비슷한 왕따 신세인 김민찬 해병과 평소 친하게 지냈으며 사건 당시에는 김민찬 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받아 근처 [[감시초소]]를 폭파시키려 했으나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포기했다고 진술했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727637&iid=456203&oid=001&aid=0005150398&ptype=011|#]],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1/07/07/0521000000AKR20110707098400043.HTML|#]] 이처럼 쉽사리 총기와 탄약이 도난당한 것은 허술한 탄약고 관리 체계 때문이었다. 관리 담당인 [[상근예비역]] 김 모 해병이 퇴근시 탄약고 [[열쇠]]를 상황실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근무시에 착용하는 옷에 넣어놓고 퇴근한다는 것을 안 김민찬 해병은 김 모 해병이 퇴근 후 그 열쇠로 탄약고에 침입해 실탄과 총기를 꺼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